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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열차, 더 테러 라이브 - 일 년에 두세 편 영화 보는 이에도 추천 본문

영화

설국열차, 더 테러 라이브 - 일 년에 두세 편 영화 보는 이에도 추천

Johnny_C 2013. 8. 3. 12:28

놓칠 수 없는 <설국열차>(Snowpiercer). 계급이 나뉜 설정부터가 이미 너무 대놓고 드러낸 거였다. 열차라는 폐쇄 환경도 그렇다. 고로 무슨, 우리 하나뿐인 지구를 소중히 여기자거나 평등한 사회를 이루자는 따위 뻔히 드러난 메시지는 봉준호 감독이 할 핵심 메시지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럼 뭘까? 이 궁금함은 어떤 반전이 있으리라 예측할 수 있게 했으며, 다행히 그 핵심은 결말에 급박하게 나타나지 않고 중후반에 어느 정도 여유 있게 나타나 줬다. 나중엔 주인공이 윌포드의 대사를 듣는 동안 관객에게 스스로 생각해 볼 시간을 충분히 줬다. 참 잘 만들었다. 이하 스포일링!

여 총리가 죽고 엔진실 윌포드가 직접 나타나 그 캐릭터를 대신하면서 길리엄의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할 때가 위에서 말한 중후반 시점이다. 캐릭터를 떠나 에드 해리스는 언제 봐도 멋지다. 오랜 기간 믿어온 자신과 자신이 포함된 집단의 신념과 목표를 관철하는 데에만 미쳐있는 주인공이 나였다면, 마지막 순간에 송강호와 윌포드가 연달아 제시한 대안에 어떻게 대응했을까? 먼저 송강호의 제안 - 열차의 머리를 쥐는 게 아닌 열차 밖으로 나가자는 것 - 에 대해서는, 그렇게 전에 없던 새로운 정보와 근거가 있을 때 비록 최종 목표가 오랜 시간 밀어온 전략이라도 과감히 바꿀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게 말로는 쉬워도 실제 상황에선 고착화된 심리 때문에 어려울 텐데, 그러니까 이 영화를 본 이런 때마다 미리 상상으로 준비해 둔다. 그리고 윌포드의 제안 - 길리엄에 대한 몰랐던 걸 알게 됨과 동시에 뜻하지 않았던 기득권의 기회가 갑자기 주어지는 것 - 에 대해선, 비록 열차가 부서져 혹독한 시련이 기다릴 바깥세상으로 나가 밑바닥부터 시작할지언정 가능만 하다면야 나도 그렇게 주인공처럼 하겠다. 기득권이 되려고 노력하기보단 세계의 체제를 바로잡을 수 있는 사람이 되려 계속 노력하고 싶다.

한 칸씩 나아가면서 과연 단백질 블록의 원료가 뭘까 내가 예상했던 바는 틀렸다. 난 죽은 사람 사체를 이용할 줄 알았는데, 나중에 나왔지만 서로 잡아먹는 일은 더 일찍 있었고, 바퀴벌레라니, 또 그걸 화면으로 보여주다니, 두 번 놀랐다. 실제로는 'ㅎㅌ 연양갱' 같던데, 맞았다면 한국 상품을 할리우드에 전파했다. 그런데 걔들이 그렇게나 번식을 잘하나? 양이 부족할 거 같은데; 그리고 틸다 스윈튼이 나오는 걸 알고 봤으면서도 난 그 여자가 그 여잔 줄 몰랐다. 그렇게 분장해 놨을 줄이야. 또 그걸 총으로 그렇게 쉽게 쏴 죽이다니, 칼로 그어서 고통스럽게 처단하지 않고; 그리고 모르겠는 게 하나 남았는데 그 결정적 다리 이름이 왜 '예카테리나'일까? 단순히 뭐 안배 차원에 러시아 이름 끼운 건 아닐 것 같은데, 잠시 검색...하고 보니 위키백과 왈 어원의 뜻이 순수함이란다. 정확한 의도는 나중에 감독 코멘터리에 나오려나 기다려 봐야겠다.

긴장감이 쉴 새 없이 이어져 훨씬 기대 이상이어서 예고편 참 못 만들었다는 생각마저 들었던 <더 테러 라이브>. 다리가 일찌감치 폭파됐으니 뒤에는 '누가 왜 그랬는가'에 초점을 맞출 거라고만 예상했었는데 그것뿐만이 아니고 상상도 못 했던 곳곳에 크고 작은 폭탄들이 이미 설치되어 있어 연쇄 테러의 공포가 이어지던, 긴장감을 처음부터 끝까지 늦출 수 없었던 작품이었다. 철저히 1인칭 시점을 유지하면서 실시간으로 진행됐기 때문에 '내가 저 상황이라면?'이라는 이입을 쉽게 할 수 있었고, 또 안 보이는 곳에서 벌어질 상황을 해당 시점에선 알 수 없었다는 점에서 정말 리얼했다.

이어폰에 폭탄이 설치됐단 얘길 들었을 땐 나도 그렇게 믿을 수밖에 없었을 거고, 자신의 여자가 현장에 나가 위험해졌어도 침착한 상태로 계속 하던 진행을 해야 했던 상황에서는 직업적 애환을 엿볼 수 있었다. 나라면 영화와 다른 선택을 했을 부분이 진작에 있었는데 바로 신고였다. 일단 신고는 하고서도 독점 중계는 할 수 있었을 거다. 다른 선택은 같거나 비슷했을 텐데 거의 끝에 1급 비밀로 온 문자를 공개한 건 너무 격했던 것 같고, 범인을 카메라 앞에서 끝까지 처단했어야 했다. 카메라 앞에서라면 공권력도 자신을 없앨 수 없었을 테니까. 그럴 때엔 자기가 광고도 하는 스마트폰 LTE 중계로 했으면 건물이 다 무너져 모든 장비가 파손돼도 인근 정상 기지국이라도 무선 전파 잡아서 방패 삼을 수 있었을 텐데, 막판에 너 죽고 나 죽자는 식으로 포기하고만 게 좀 아쉬웠다. 딴에는 테러범과 국민의 신뢰를 받던 앵커를 동일화하면서 원인 제공은 비상식적 주변 환경 또는 정부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모양인데, 논리나 인과성이 관객마저 공감시키기엔 좀 버거워 보였다.

방송 직전에 차 음료로 입 헹구고 마시는 건 누굴 따라 한 걸지, 어느 영화에선가 앵커 역 배우가 감기 걸리면 끝장이라며 치약 몇 가지를 동시에 쓰는 모습은 본 적 있는데 이번에 하정우가 앵커의 뒷모습을 하나 더 알려준 셈이다. 또 앵커는 아니었지만, 라디오 진행자로 분했던 수애의 <심야의 FM>도 살짝 떠올랐다. 보고 난 직후에는(둘 다 31일) <더 테러 라이브>가 더 괜찮았다고 생각했으나 시일이 지날수록 <설국열차>가 자꾸 더 떠오른다. 둘 다 안 볼 수 없는 영화임은 분명하다. <신세계>와 <스토커>쯤이 언젠가? 2월 이후로 거의 반 년 만에 놓칠 수 없는 국내 작품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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