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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인 - 현재와 과거의 대화 본문
상영 5분 전에 표 사는 현장에서 몇 남지 않은 자리 보고 깜짝 놀랐다. 와, 이런 영화가 얼마 만인가. 복합상영관 시대라 제아무리 블록버스터라거나 논쟁작이라도 구석 자리만 남은 영화는 간혹 있었어도, 또 그러면 예매를 하거나 다른 영화를 보거나 다음 회차를 보기는 하지, 이렇게 구석 자리마저 다 채운 영화는 언제였는지 기억이 안 난다. 첫날이라 그랬는지 몰라도, 아마 본 영화 상영까지 15분쯤 사이에 남아있던 서너 자리도 다 팔려 매진됐을 거다. 경쟁적으로 자기네 영화가 매진이라고 홍보하던 90년대가 떠올랐다. 솔직히 이 정도 열기일 줄은 몰랐다. 그러니까 5분 전에 표 샀지.
이 영화에 이런저런 꼬투리를 잡을 사람도 있을 거고, 극찬해 마지않는 사람도 있을 거다. 난 간단히 이 한 마디만은 확실히 해두고 싶다. 이 영화는 현재와 맞닿아 있다고. 지나간 과거 일을 그린 영화로 치부되어선 아니 될 것이라고.
영화 속 E.H.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란 책이 나온다. 내 세대는 고등학교 때 국사를 국정 교과서로 배웠는데, 첫 장에 이 책과 그 핵심이 소개됐던 기억이 난다.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한 걸음 더 나아가면 현재와 대화를 할 때라야 과거도 의미가 있다. 영화는 이 책을 전면에 내밂으로써 송강호의 대사와 연기를 훨씬 더 의미 있게 해줬다. 아, 곽도원도 또 아주 인상적이었다. 나왔다 하면 한 인상 남기는데?
2천하고도 13년도를 살아온 난 때론 가만히 집에서 밥 먹고 앉아 생존해 있는 것 자체가 부끄럽기도 하다. 뭐든 정반대였던 사람보단 가운데쯤 있던 사람이 한쪽에서 정도를 넘는 걸 보면 더 열 받는 셈이랄까. 나 자신부터 이럴진대, 자식은 도대체 어떻게 낳는담? 내 부모님은 도대체 어떻게 날 낳았담? (응?) 평상시 애써 묻어뒀던 생각들이 삐질삐질 고개를 내밀어 나오는 발길이 마냥 무겁고 착잡하고 우울했다.
그나저나 송강호는 요트도 샀던 영화 속에서처럼 이제 벌만큼 벌었나 보다. 배우에 대해 이런 생각이 든다는 것도 실은 참 슬픈 건데, 어쨌든 앞으로도 계속 볼 수 있길 바란다. 전도연 작품 여운도 채 가시기 전에, 요즘 영화가 가슴을 이리도 자꾸 긁는지.
영화 얘긴 끝났고, 난 이 블로그를 많은 사람이 보길 바라진 않는다. 옛날에 일부러 점유율 낮은 포털 한미르-파란에 썼던 건데 거기 없어지면서 의도치 않게 사람 많은 티스토리에 중복해 블로그를 갖게 됐을 뿐이다. 어릴 때 쓴 글들 다시 보면 부끄럽기도 한데 폐쇄할까 하면서도 누가 보겠나 싶기도 하고, 작품을 다시 봤을 때 감상의 차이를 보는 맛이 간혹 있어서 하나씩 연명이나 시키고선 일부러 검색에 잘 나타나지 않도록 다 쓰고선 손을 좀 본다. 공개로 글을 쓴다는 점은 나 자신이 뭐에든 꾸준토록 채찍질하는 의미도 좀 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