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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가는 길 - 恨의 정서를 건드려 본문
대대적 흥행 시즌에 앞서 2주 이상 일찍 개봉하는 영화는 그만큼 자신감이 있단 뜻이라고 본다. 이번 크리스마스 연말연시 시즌을 겨눠 이번 주에 일찌감치 개봉한 영화 중에선 이 영화가 잘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다. '믿고 보는' 이란 수식어가 좋기는커녕 되려 부담스러울 수도 있을 만한 대배우 전도연의 실로 오랜만의 등장이다. 뭐든 고객의 기대가 높으면 만족도가 그만큼 떨어질 수밖에 없는데, 그런 무게를 이런 한 분야의 정상급 '한 사람'은 과연 어떻게 극복했을까? 이런 궁금함마저 아이러니하게도 영화에 대한 기대를 더 높여만 줬다. 굳이 따지자면 외향적이기보단 내향적인 것 같은 고수도 포함해 두 주연 배우의 감정 과잉 따위는 없을 거라고 예상은 하면서도, 방은진 감독의 감성적 연출과 어떻게 조화를 이뤘을까도 궁금했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후반, 말 그대로 뒤의 반 정도 거의 한 시간쯤은 주변에 훌쩍이는 사람이 꽤 있어서 눈물 훔치려고 휴지 등등을 쥔 손들이 오르락내리락하는데, 펑펑 우는 게 아니라 그런지 성인도 한 시간씩이나 울 수도 있긴 있는가 보다. 나중에 일어설 때 탈수로 쓰러지는 관객은 없을까 걱정될 지경이었다. 그런데 나는 눈물이 나진 않았다. 딱히 눈물 억지로 참는 타입은 아닌데. 대신 난 보는 내내 화가 꽤 나 있었다. 처음 화가 난 장면은 공항에서 잡힐 때 외국어를 몰라서 그저 "No."만 반복하는 거였다. '차라리 묵비권을 행사하는 게 낫지!'라고 여기고, 그리곤 끝까지 나를 지배한 감정은 내내 분노였다. 물론 그 잔잔한 분노의 이유는 두 주연 각각의 답답함과 대사관의 대응 등으로 돌아가면서 계속 바뀌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신기하기도 하다. 일단 첫 감정이 가라앉고 다음 장면에서 다른 이유로 다른 감정이 솟는 식의 감상이 보통일 텐데, 어째 이 영화는 나의 분노였든 다른 관객의 슬픔이었든, 일단 한번 일어난 감정을 끝까지 끌고 갔다. 별로 말초 자극적이지 않았으면서도 그렇게 꾸준히 잔잔한 감정의 파동을 은근히 지속시킨 게 지금 돌아보면 대단했던 것 같다.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른 감정을 자연스럽게 끌어낸 것도 대단했다. 의도한 대로 된 건진 모르겠지만, 여기선 웃고 저기선 울고! 하는 감독의 권력이 느껴지지 않아 편안했다.
내 마음 그 잔잔한 파동은 나의 '집으로 가는 길'에도 가라앉지 않았고, 본지 하루가 넘은 지금까지도 완전히 가시진 않은 것만 같다. 한국 특유의 恨의 정서에다 그 울분. 그런 슬픔이나 분노는 모두 가슴에 묻고 나오는, 아름다운 명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