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ay
Total
Recent Comments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Archives
관리 메뉴

BelLog™

리카르도 무티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CSO) 내한 첫날 본문

공연

리카르도 무티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CSO) 내한 첫날

Johnny_C 2016. 1. 29. 04:10

리카르도 무티,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CSO). 마음 같아선 이틀 다 가고 싶지만 좀 비싸야지. 보통은 이 CSO 라이브를 찾아가는 이유라면 단연 파워풀한 금관을 통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고자 함이 주목적이었을 텐데, 이를 위해서라면 사실 이튿날 프로그램이 조금은 더 적합해 보였다. 첫날 프로그램은 그보단 현재의 무티 CSO 조합 라이브는 어떤가 보여주는 바로미터 격으로, 이튿날은 그런 가운데 어떤 특성을 드러내기 좋은 선곡으로도 보였다. 그래서 초중급 감상자는 첫날, 중고급 감상자는 이튿날이 적당해 보였는데, 나는 첫날로 예매했다.

첫날 각각 '운명','거인'으로도 불리는 두 교향곡 베토벤 5번과 말러 1번은 보기에 따라 자살방지 시리즈일 수도 있다. 또 베토벤 5번은 시대적인, 말러 1번은 계절적인 시점상 의미도 있겠지만, 이튿날 프로그램은 무티와 CSO가 역량에 집중할 수 있을 대신에 그런 시점상 의미는 상대적으로 덜 해 보이기도 했다. 첫날 가서 앉아 있으면 1부 땐 구슬려도 별로 흐트러지지 않게 응집된 걸 잘 들여다볼 수 있을 것에다가, 2부는 시작부터 서서히 동이 터 한 줄기에서 시작된 빛 등등이 깊숙이 뭉쳐있던 감정을 마지막에는 신경 끝까지 끄집어내 줄 수 있을 흐름을 예상했었다. 공연일을 앞두고 한동안 계속 듣다가, 마지막에 들은 베토벤 5번은 샤를 뮌슈 보스턴 심포니, 말러 1번은 제임스 레바인 런던 심포니가 됐다.

CSO부터 구경하던 중 리카르도 무티의 등장. 2013년에 볼 수 없었던 그가, 이제는 이미 완전한 그의 오케스트라 CSO와 함께 비로소 서울 무대에 나타난 것만으로도 감격이었다. 그가 포디엄에 오르자마자, 한 호흡 짬조차 없이, '어라?' 했을 정도로 거의 바로 지휘를 시작했는데, 나만의 느낌이었을까? 그래서인지 CSO의 사운드가 처음엔 응축이 덜 된 것 같았지만, 다시 말하면 이내 곧 응집력과 집중력을 보여줬다. 이 느낌은 말러 1번을 마칠 때까지 마찬가지였고, 겉보기엔 대충 하는 것 같아도 사운드는 뭔가 무른 느낌이 없었다. 작게 들여다봤을 때 특정 부분에서 특징이라 할만한 게 별로 없었지만, 크게 흐름을 봤을 땐 무티 선생이 스무스하게 감싸 균형을 잘 잡아주고 있었다. '별로' 없던 특징 하나가 뭐였느냐면, 대단히 남성적인 베토벤 5번 곡이 끝나기 1~2분 말미에서 "남성미를 막 내세우진 않습니다." 이런 걸 딱 느꼈다. 말러 1번 등 이후에 균형미를 더 기대하라는 메시지였던 것 같다.

"힘을 통제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여유가 드러난다."라는 일전의 재규어 광고 문구가 떠오른다. 무티 선생께도 CSO에도 그런 여유가 느껴졌다. 무티 선생은 쉽지 않게 오른 서울 무대라고 굳이 쇼맨십을 보이려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냥 자연스럽게, 그렇게 내재된 자신감으로부터 오는, 그런 힘이 느껴졌다. 기대했던, 금관으로부터 오는 카타르시스 그런 건 솔직히 오히려 특징이라고까지는 별로 못 느꼈다. CSO는 각 파트가 모두 잘 살아 있고, 무티 선생은 그동안 밸런스를 잘 잡아오는 조련을 해왔는지, 무대 위에서 별일 안 벌이는데도(?) 명확히 하나의 음악을 이뤄내고 있었다. 아, 사이먼 래틀 베를린 필이 무조건 최고라고는 할 수 없던 이 춘추전국시대에, 2016년 현재만큼은 분명히 리카르도 무티 CSO의 시대라고 과감히 글로 남겨도 맞겠구나. 흠 잡을 데가 없는, 평생 잊지 못할 정도의 깊은 감명을 받았다.

클래식 명반이란 최소 몇 년이란 많은 세월이 필요하다 보니, 2016년 무티와 CSO가 이렇게 왔는데 '최정상급' 또는 '탑X'라는 수식어조차 혹시 저평가였을지도 모른다. 비싸다고 타협했으면 모른 채 지나 보낼 뻔했네. 2013년이 아닌 2016년에 만난 게 오히려 행운일 수 있다. 아, 잠을 이룰 수가 없는 게 정상이다. 기어이 새벽에 글을 쓰고야 말았으니. 운명의 일화에 황제라고도 외쳤다는데 그런 힘으로 뭔가를 극복할 수도 있겠지만, 말러가 말하는 것처럼 거인이란 특별히 타고나는 게 아니라 남들처럼 이리저리 치이면서도 작은 한 걸음 한 걸음을 딛다 보면 저도 모르게 거인이 되어가는 게 아닐까.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