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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팽 콩쿠르 갈라 콘서트 2시 공연 본문

공연

쇼팽 콩쿠르 갈라 콘서트 2시 공연

Johnny_C 2016. 2. 3. 01:31

[예매 전쟁] 쇼팽 콩쿠르 우승자 갈라 콘서트 2시 공연을 바로 전날 예매 성공하여 다녀왔다. 원래 8시만 있었는데 조기 매진 사례로 2시 공연이 추가된 거라 8시 분들은 열성이 아주 대단한 분들일 거라, 또 월요일에 직장에 가보니 다음날 빠져나오지 못할 거 같은 사람들이 취소할 것을 예상하고, 그래서 2시 직접 예매를 노리고 있었던 전략 성공에 뿌듯했다. 대학 시절 수강신청하던 때가 떠올랐다. 클릭의 세계는 냉정하다. 인터넷으로 양도하는 거는 굳이 모르는 내게 줄 것 같지 않아서 애초에 노리질 않았다. 아 그리고 2시 공연에만 두 협주곡이 다 있어서 메인인 8시 프로그램과 다르더라도 오히려 더 나은 선택일 수도 있다. 한국인 조성진도 물론 궁금하지만, 프레쉬한 입상자들을 모두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갈라 콘서트라는 점에도 놓칠 수 없었다.

[개인사] 고전음악을 사랑하는 사람 중 쇼팽 피아노 관련 사연이 그 누가 없겠느냐마는, 난 어릴 때부터 클래식을 좋아했는데 중학생 때까지는 쇼팽은 잘 듣지도 않았고 별로 좋아하지도 않았고 치지도 못했다. 베토벤까지만 겨우 칠 수 있었는데, 그러다가 98년에 광화문 교보 내에 핫트랙스에서 유료회원으로 가입하면서 내 돈으로 샀던 첫 CD가 바로 쇼팽이었고, 스타니슬라프 부닌의 앨범인데 연주자 보고 골랐다기보다는 종류별로 하나씩 있는 앨범이라서이기도 했고, 특히 스케르초 2번이 있어서였다. 자세한 사연은 여기엔 생략하지만, 낭만주의에 처음 진입한 거였다. 나중에 부반장한테 쇼팽 악보책 있는 걸 알고는 빌려서 아는 곡이 녹턴 2번이 있길래 복사하여 혼자 연습해 좀 치게도 됐다. 후에 영화 피아니스트 OST와 임동혁 앨범으로 CD 시장 초기에 같은 곡 다른 연주 CD 간 비교 감상을 처음 한 것도 쇼팽 피아노였다. 그러다가 군대 시절 피아노를 전처럼 칠 수 없게 되었고, 10년쯤 지나 작년 초에는 직장에서 마우스 드래그를 너무 많이 하는 자리에 있다가 한때는 젓가락질도 못 했는데 피아노는 언감생심. 내게 나중에 피아노 쳐달라던 사람과 그런 얘기도 언제부턴가 서로 하지 못하고 이미 과거가 되었다. 젊은 남자들에게 소위 '작업용' 피아노란 뉴에이지 곡들인데, 클래식만 하는 내게 그나마 접점 격이 쇼팽 피아노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내가 좋아서 차마 내려놓진 못 했던 피아노란 내게 결국엔 과거로서만 남는 것일까, 그러던 차였다.

[현장 사정] 언론이 진을 치고 있는 가운데 배우 강석우가 TV 인터뷰하는 걸 봤다. 들어가 보니 남녀노소 다양한 가운데 젊은 여성이 많아 보이기는 했다. 또 같이 온 것 같은데 자리를 붙여 앉지 못한 분들이 꽤 많아 보였다. 시작하기도 전에 그 열기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들이었다. 이윽고 첫 연주자 입장하고 연주를 시작했는데, 어라? 프로그램 순서가 바뀌어 있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감상에 집중을 못 했다가 얼른 정신을 차려야 했다. 보아하니 8시 공연 때 등장할 순서와 똑같이 6위부터 1위 조성진까지 입상 순위대로 재배치한 거였다. 원래는 4-5-6-1/3-2위 순으로, 2부에 3위와 2위가 협주곡 하나씩 하는 거라 조성진이 1부 마무리를 하는 걸로 예상했었는데, 음악인데 순위지상주의일 게 뭐 있나 싶으면서도 지금 생각해보니 그게 아니라 2시 공연에서는 앙코르를 안 하려던 조성진이 그래도 해주려고 가장 마지막으로 뺀 게 아닐까 싶다. 그리고선 앞에 4위랑 6위만 안 바뀌어 있으면 그것도 또 이상할 수 있으니까.


어쨌든 스케르초 2번으로 문을 열어준 건 드미트리 시쉬킨이었다. 순서 바뀐 거에서 정신 차리고, 오늘 피아노 스타인웨이 같은데 음색은 내가 다른 거랑 비교할 수가 없어 잘은 몰라도 진득하면서도 맑은 편인 것이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었다. 위에 언급만 한 스케르초 2번 관련 내 개인사 떠올리고, 이러다가 그만 첫 곡이 지나가 버렸는데, 핑계라면 오늘은 되도록 생각을 줄이고 음악에 빠져보고도 싶었다. 8시에 그가 할 론도 연주를 궁금하게 된 채 무난하게 좋았다는 느낌으로만 넘겨야 했다. 스케르초 2번은 10대 땐 그야말로 익살스러운 장난처럼 재밌게만 들리다가 20대 땐 사랑싸움처럼도 들리다가 30대엔 화날 때 그대로 내는 게 좋을지 어떨 때 눈물로 소화해 내는 게 좋을지 갈팡질팡하는 인간의 내면을 담은 것 같아, 겉으론 쉬운 것 같아도 감상할수록 점점 더 어려운 곡 같다. 그래서 오히려 별생각 없이 들은 셈이다.

곧이어 이케 토니 양이 나와 뱃노래와 화려한 대왈츠를 연주했다. 뱃노래 때는 일단 '아, 저 친구 한 테크닉하네'였다. 이런 생각 되도록 안 해야지 하면서도, 화려한 대왈츠에서도 그 생각이 떠나진 않았으며, 아무래도 왈츠라 그런지 중후반에는 그에 더해 본인이 즐기면서 치는 느낌을 받아 보는 나도 좋았다. 그러면서도 전체적인 느낌은 서정적인 면보단 머리로 치는 느낌이 다른 연주자들보단 조금은 더 들었다. 저녁에 할 곡도 그렇고 이케 토니 양은 고단수의 기교나 프레이징이 필요한 곡들을 선곡했다. 그래서 더 그렇게 보였는지도 모른다. 아, 너무 짧아! 나도 짧고! 잠깐 딱 보고 확실히 평할 수준이 안되니.

원래 첫 순서였던 에릭 루는 전주곡 중 5개를 했다. 조성진 1위 후 처음 나왔던 앨범에도 협주곡 아닌 24개 전주곡부터 모두 쭉 실려 나왔는데, 그렇게 전체를 들을 땐 구성, 구조적 의미도 있다. 먼저 4번은 뭣 모르고 땡땡거리며 치다간 쇼팽이 의도한 느낌이 나지 않을 텐데, 무리 없이 잘 해줬다. 15번은 빗방울이란 이름으로 유명한 곡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좀 움직이고 객석 잡소리가 꽤 나고, 기교가 꽤 필요한 16번에 이어 17번은 내가 잘 모르겠고, 마지막 24번은 마지막에 3연타 내리치는 포인트까지 살려 인상적으로 해줬다. 다만, 전체적으로 에릭 루는 음이 좀 뭉개진다는 느낌을 받아 아쉬웠다. 하지만 함께 온 수상자 중에서도 나이가 더 어린 편이란 걸 감안해서 앞으로 더 발전하라고 박수 쳐주고 싶다. 사실 이렇게 말하는 것도 나도 웃기다. 그래도 쇼팽 콩쿠르 수상자다.

이어 협주곡을 위해 악단 의자가 배치되고 오케스트라와 지휘자가 입장, 피아니스트들 뒤에 항상 있었지만, 이들도 엄연히 바르샤바에서 와준 거라 새삼 감사하다. 홍일점 수상자 케이트 리우가 하얀 드레스를 입고 협주곡 1번을 했다. 전체적으로 비주얼 액션이 의식적이진 않고 자연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소위 삑사리 몇 번 있었던 것 같은데, 그건 그렇다 치고, 아무튼 오늘 내 감정이 이 1악장 끝 무렵에 정점에 달했다. 마음이 동하고 있었다. 화려한 것 같지만, 이면에서 지울 수 없는 아쉬움을 지워야만 한다고 싸우고 있었다. 2악장은 약간 반 정도 멍한 상태로 1악장의 채 못 지운 아쉬움의 끝을 서서히 놓으며 난 2015년과 마음으로 진정 작별하고 있었다. 3악장에서는 기교 감상하면서 멍한 정신 차렸다. 앞으로 더 다듬고 성장할 케이트 리우의 미래를 기대하게 한 연주였다.

2부 샤를 리샤르 아믈랭이라고 이름이 길다. 협주곡 2번은 위에 적었던 그 부닌 CD 시절부터 듣던 곡. 샤를 리샤르 아믈랭의 전체 느낌은 안정적이라는 거다. 안전주의라는 게 아니고 안정적. 음, 저 친구는 차이콥스키 콩쿠르에 가보면 또 어떨까도 싶었다. 조성진 때 더 세게 못 칠까 봐 박수를 적당히 자제해야 했다. 갈라 콘서트에는 이런 고충(?)이 꼭 있다.


마지막 조성진이 드디어 등장하자마자 환호가 홀을 감싼다. 쇼팽 피아노 중 대체로 남성성이 강조된 세 곡 선곡이다. 귀엽다. 자기도 한국에 여성팬 많은 걸 알고 선곡했을 것 같다. 녹턴 13번으로 시작하는데 첫 음 딱 들었을 땐, 가수가 첫 음정 높게 잡은 것처럼, 강약을 너무 세게 잘못 잡은 걸로 여겼으나, 이내 곧 두세 마디 만에 그게 아니었단 걸 알게 됐다. 녹턴 13번이 짧은 음으로 시작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이음줄로 시작하는 곡인데, 앞서 연주한 친구들까진 내가 애들 다독이고 아끼는 느낌으로 있었다면, 조성진은 몇 마디 만에 피아노와 무대와 청중인 나까지 완전 장악하여, 바로 겸허하게 만들었다. 피아노를 혼자만 바꿔서 그런 것도 아닌 걸 내 눈으로 다시 확인해야 했다.

명반을 논할 때 명확한 타건력이라고 하는데 그런 표현이 막 떠오르고, 미디어로 접했던 조성진의 어린 얼굴 이미지를 음악과 매칭이 안 되어 바로 지워야 했고, 앞서 연주들이 현재 거장이 아닌 미래 거장들이라 그들에 이어 상대적으로만 들어서 순간 과대평가하고 있는 것일까 내 귀를 의심하며 감상해야 했다. 중반에는 나도 모르게 입이 벌어졌었다. 와, 오버하는 허언이 아니라 정말 다르다. 전문가도 아닌 나 같은 감상자가 느꼈을 정도면 말 다했지. 도대체 어떤 어린 시절을 보냈기에, 저 나이 같지가 않다. 측은지심이 들만 한 아직 안 알려진 과거가 있다면 콩쿠르 우승 후 보상받는 걸로 여기면 되겠다.

이어 환상곡 작품49는 저 유명한 조르주 상드와 쇼팽이 서로 좋으면서도 싸우기도 하고 그러다 마지막에 화해를 표현했단 걸로 유명한 곡인데, 나도 그런 상상에 빠져 있었다. 짧지만 협주곡 감상만큼이나 서정성, 파워, 이해 등이 잘 조화된 걸 가늠할 수 있는 정도였다. 공부해서 보일 수 있는 모범생식 연주가 아니었다. 무슨 인생에 과거가 분명 있다, 있어. 한국인이 저 정도 해석력이라고 이상할 것도 없었다. 10년 전 6월에 폴란드 여행했었는데, 여타 유럽 나라들과 다르게 한국과 감성 정서에 공통점이 많다고 느꼈었다. 강국 사이에 침략도 많이 받았으면서도 선한 사람들, 와중에 나름대로 문화적 자존심을 지키고 있었으며, 그 중 대표적인 게 바로 쇼팽이었고, 조성진이 이 모든 걸 이미 꿰뚫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영웅 폴로네이즈를 하는데 앞에 이미 느꼈음에도 나도 모르게 다시 한 번 입이 벌어졌다. 참고로 나는 며칠 전 명장 리카르도 무티를 봤어도 입이 벌어질 정도로 쉽게 넋 놓는 사람은 아니다. 밀당을 한다고 하면 흔히 템포나 강약을 말하게 되는데, 조성진이 밀당을 하긴 하는데, 그런 밀당보다는 전체에 대한 집중력에서 밀당을 한다. 도중에 집중력을 잃는단 뜻이 아니고, 집중의 밀도를 조절할 줄 알아 보인달까나. 아, 음악 말로 표현하기 새삼 참 어렵다.

내 기대가, 무슨 거장 연주가 아니고, 콩쿠르 우승자, 즉 미래의 거장감 미리보기 정도로 여겼는데, 반성했다. 어리다고 앞으로 잘 되어라 이런 말도 맞지 않겠다. 이미 내가 감히 논할 레인지를 넘어 그 밖에 있다. 인터뷰 내용을 보면 인성도 그렇고 방향성이, 앞으로 정말 길이 남을 거장이 되길 충분히 바랄 수 있겠다. EMI나 SONY가 아니고 DG가 사람 바뀌면서 모험이라도 하나 했는데 내가 잘못 생각했고, 바로 그렇게 얼른 접수한 이유가 역시 다 있었다.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으며 들락날락하더니 어느새 냉큼 앉아 앙코르 해주는데, 녹턴 20번이었다. 유작이라서, 또 글 위에서 언급한 피아니스트 OST로도 유명한 곡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나만 하고 가버렸다. 저녁도 있으니 이해는 하면서도 방금 마지막이라고 한마디라도 해줬으면 하는 게 또 아쉬웠다. 자기 입으로 2~3곡'만' 한대 놓고. 그래서 난 낮에 2곡 저녁에 3곡할 줄 알았는데. 이런 호사를 누리고도 욕심이란 끝이 없는 게 짧은 에튀드와 마주르카 하나 없던 게 못내 아쉬웠다. 부디 단명하진 않길 진심으로 바란다. 천재라는 표현을 좋아하진 않지만, 그런 사람은 단명한다고들 하잖나. 그런 걱정이다.

음악회도 마사지처럼 약간 중독성이 있다. 전에는 의식 레벨에서 자제했던 건데, 최근 두 음악회에서 '행복'이 바로 이런 거라고 느낀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산다는 게 과연 무언가, 그 우문에 현답을 찾아 헤매다 또 음악회를 기웃거리게 된다. 그 음악 속에서 저 연주자들이 답을 전해주길 바라며. 오늘 조성진으로부터 한 수 더 배웠다. 나중에 언젠가는 꼭 만나고 싶다. 고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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