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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트맨 비긴즈 본문
난 이걸 왜 못 봤지? 돌아보면 병장 때였다. 다크 나이트로 이어진 시리즈 뒤편은 그냥 멍하게 봤던 것 같다. 워낙 어릴 때부터 봤던 ('~과 로빈'만 빼고) 배트맨이었는지라 언제 그 앞편들을 다 볼까 싶어서도 그랬는데, 놀란 감독이 새로 3부작 구성을 했다는 것과 이거 하나만 봤어도 괜찮았다는 건 최근에나 안 거였다. 그래서 그랬는지 앞에 써놨던 글들을 지금 보면 뭘 알고는 봤던 건지 웃기다. 시리즈 중간 작품이라도 각개 완결성은 있다고 믿었던 거였는데, 이 <배트맨 비긴즈>를 보니 이건 꼭 먼저 봤어야 했다. 먼저 봤던 뒤 두 편에선 내가 새 시리즈에 적응도 못했을뿐더러 '갑자기 쟤는 또 뭐지?' 싶게 나타났던 인물들도 몇 있다. 인물부터 그랬으니 그런 인물들이 왜 어떻게 뭘 하는지는 말할 것도 없겠다.
나로선 뒤편에서 알았어야 했던 것들을 이 <배트맨 비긴즈>에서 뒤늦게 한꺼번에 깨달았기 때문일까? 난 이 <배트맨 비긴즈>가 가장 마음에 든다. 제목대로 시작이라 그런지 철학을 제시하고 선택하는 과정은 거의 여기에 담겨있을 수밖에 없다. 뒤에 '다크~' 두 편 역시 나름대로 주제가 또 있었지만.
판타지를 현실로 끌어온 것도 이 <배트맨 비긴즈> 뿐이다. '다크~' 둘도 현실 이야기처럼 될 수 있었던 건 이 <배트맨 비긴즈>가 있는 덕분이다. <배트맨 비긴즈>를 보지 않은 채 '다크~'를 봤던 내겐 배트맨의 가젯들은 여전히 상상 속에 빚어진 비현실적 장치들일 뿐이었다. 그러나 <배트맨 비긴즈>를 보고나니 현실성을 수긍하게 됐다. 혹시 <배트맨 비긴즈>를 보지 않고 '다크~'를 봤던 다른 누군가가 있다면 나와 비슷한 생각을 다 했을 것이다.
재미도 물론이고, 두고두고 보면서 심리학적으로 생각해볼 만한 가치도 있다. 박쥐들을 무서워했으나 그 공포를 받아들여 느끼지 않도록 함으로써 일어날 수 있었는데, 최신작 <다크 나이트 라이즈>에서는 우물 탈출 때 공포를 다시 느끼도록 함으로써 살아나갈 힘을 얻었던 것이 재미있는 대칭이다. 시간 많을 때 3부작을 다시 쭉 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