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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롯데콘서트홀 말러 8번 천인 교향곡 (27일)

Johnny_C 2016. 8. 29. 05:44

말러 8번 천인 교향곡은 수많은 음악 중 하나가 아닌, 그 어떤 극점 중 하나일 거다. 단지 천 명이 동원되어서가 아니라, 음악 내용으로나, 작곡 스토리를 보아도, 말러 음악 중에서뿐 아니라 인간사를 놓고 시기적으로 보아도 그렇다. 어떤 음악이든 그냥 들어도 되지만, 왠지 그러면 안 될 것 같은 게 또 이 말러 8번 천인 교향곡 아닌가. 내가 이 실황에 가도 될 레벨이라고 여기진 않지만, 인생에 한 번쯤이라면 그건 바로 '지금뿐'이란 생각이 들었다.

쉽게 공연할 수 있는 곡이 아닌 만큼 가끔 할 때조차 천 명보다 축소해서 공연하고, 천 명 이상이 동원되면 언제 어디에서 했다는 게 세계적으로 기록된다. 이번에 롯데콘서트홀 개관, 나의 이 분야에 관심, 자금 여유, 시간 여유, 왜 그런 델 거금 들여 가느냐고 아무도 옭아매지 않는 마음의 자유, 이 모든 게 맞아떨어진 타이밍이란 정말 일생에 한 번이란 게 과언이 아니다. 어디 나만 그러랴? 누구에게나 평생 잊지 못할 '인생 공연'일 거다. 좌석도 천인이 다 들어서려면, 저렴할 합창석이 비어 있을 수 없어 상대적으로 비쌀 수밖에 없다. 막상 가 앉아서 든 생각도 공연자 지인이 하나씩만 와도 객석이 거의 다 찰 텐데, 지인 할인도 없이 간 나 같은 관객은 극소수가 아닐까 하는 조금 억울한 짐작도 없진 않았다.

롯데콘서트홀은 첫 공연이 지난 금요일 밤이었으니 난 일주일 딱 넘겨 처음 간 거였다. 잠실역 롯데월드몰 입구에서 콘서트홀 이정표 따라 쭉 들어가서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8층에 올라가기란 한 번에 가기에도 어렵지 않았다. 입장하니 이미 각 합창단마저 가득 들어선 빈야드 모습이 시각적으로 이미 압도한다. 어느 좌석에서나 포디엄이 꽤 가까워 보였다. 표정을 보려고 안경을 따로 챙길 필요가 없겠다. 아, 예술의 전당보다 좌석 수도 적고, 쭉 비쌀 수밖에 없겠다.

그런 생각이나 하다 말고 파이프오르간으로 시작될 소리에 마음의 준비는 긴장 반 설렘 반, 드디어 울리는 첫 음과 곧이어 들리는 'Veni' 가사로 이어지는 화음은 그냥 '와!' 이런 느낌표였다. '너는 누구든지 감히 귀로 머리로 이 음악을 들을 생각 자체를 잊어라.' 뭐 이런 때림이었다. 압도당한다는 게 이런 걸 거다. 좀 듣다 보니 롯데콘서트홀이 확실히 예술의 전당보다 에코가 셌다. 어디가 더 낫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닌, 곡이나 취향에 따라 더 적합한 콘서트홀이 나뉠 걸로 보인다. 난 가격 대비 괜찮은 공연과 좌석이라면 어디든지 좋다.

1부는 일단 괴테의 파우스트인 2부보다는 쉬운, 거의 내내 올림 또는 요청 같은 거니까 소리를 즐기는 데에 먼저 더 집중했다. 귀로 듣고 앉아 있는 게 아니었다. 귀를 넘어 가슴까지 파고드는 음악, 아니 소리. 이 말러 8번 천인 교향곡 실황 앞에선 그저 숙연해지고, 나도 모르게 겸손해지는바, 음악을 듣는 주체가 나인 게 아니라, 그 소리가 있는 곳에 내가 한 자리 함께 있을 수 있었다는 자체가 기쁨이 되었다. 2부까지 합쳐 곡 전체에서 두어 번 소름이 돋기도 했다. 사운드 때문일 수도, 의미 감상 때문일 수도 있다.

2부 내용은 파우스트 일부이기도 한데, 1부보다는 상대적으로 소리보다 의미를 계속 곱씹어 봤다. 내림 받는 게 무얼까, 절대자가 주는 걸 그냥 받는 게 아니라 인간 스스로 깨닫게 도움을 받아 사랑을 나누며 서로 돕는 게 내림 받는 것 아닐까, 난 그런 생각을 해본다. 참고로 나는 크리스천은 아니지만, 반감 또한 없는 정도로 밝혀둔다. 사람에 따라 해석을 조금씩이나마 달리할 여지가 있어 말러가 어렵다고는 해도 어차피 완전히 이해하지 않을 바엔 그래서 더 재밌을 수도 있다. 다소 절대성이 강했던 헨델 메시아가 나왔던 바로크 시대와는 또 다른, 말러의 시대가 우리 시대와 그렇게 큰 간극이 있는 때가 아니니까.

그리고 이렇게 몇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는 게 다가 아니라 말로 채 표현하기 어려운, 그런 감동과 전율이 있었다. 사람이 들을 수 있는 한계를 다 듣고 있던 것만 같았다. 제아무리 고급 오디오에 설령 볼륨을 한껏 드높일 수 있다 해도 층간소음 때문에 마음이 불편해 온전히 즐거울 수조차 없는 게 우리 모두의 현실 아닌가. 그런 삶에서 이런 소리를 이렇게 마음 놓고 실컷 감상할 기회는 정말 별로 없다. 그런 볼륨감이 내 귀의 역치를 넘고도 치찰음이 없을 때 - 아, 너무 기계 같은 표현일까 - 아, 원래는 이런 소리구나! 그런 신세계를 경험하는 짜릿함이 또 다시 없다. 천상을 살짝 엿보고 돌아온 기분이다.

롯데콘서트홀 내부롯데콘서트홀 말러 8번 천인 교향곡 커튼콜롯데콘서트홀 외부 옥상정원옥상정원에 단체사진 찍는, 공연했던 합창단 중 어디 아이들인진 모름

Deutsches Museum말러 8번 천인 교향곡 초연한 곳. 당시 Neuen Musik-Festhalle, 현재 Deutsches Museum 교통전시관, Münch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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