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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아후 인발과 올가 케른 (25일) 본문

공연

엘리아후 인발과 올가 케른 (25일)

Johnny_C 2016. 8. 29. 05:20

처음 예매할 땐 인발 지휘가 어떤가를 직접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25일은 더 전부터 고대했던 롯데콘서트홀의 말러 8번이 있는 날이었지만, 그건 27일에도 있는데 여러 날 공연하면 첫날은 내가 원래 피하려고도 하니 괜찮았다. 그러고 기다리던 중 라벨 피아노 협주곡 대신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으로 프로그램 일부가 바뀌었으나, 내 기대는 브람스 교향곡 2번이라 개의치 않았다. 공연 불과 하루 전까지도 혹시나 취소해도 무료로 할 기회만 늘어난 셈. 그러나 막상 8월에 들어서자 오히려 그것 때문이었을까, 불과 이틀 차이인 롯데콘서트홀 공연 기대가 너무 커서 내 관심이 상대적으로 줄어들어 그냥 취소할까 여러 차례 갈등했다가, 비싼 좌석도 아니니 하다못해 리프레셔 정도로만 삼아서라도 가기로 한 거였다.

그런데 기대 이상이었다. 그랬던 나의 내적 갈등이 스스로 무안해졌을 만큼. 연세 때문에 혹시 엘리아후 인발 템포가 유난히 느리면 어쩌나 하는 우려가 있었는데 연주 시작할 때 바로 불식되면서 음악 자체에 자연스럽게 집중할 수 있어 안심했다. 이날 전체적으로 어두움에서 서서히 밝음을 향하는 구성으로 느꼈다.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 4집은 모두 드보르자크 편곡인데, 이번에 내게 들리기로는 집시들이 마치 '너도 돌아다녀봐, 재밌다구!'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공수래공수거라고도 했다.

잠시 피아노 이동 후 올가 케른이 나와 라흐마니노프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을 하는데 전곡이 그렇게 있는 줄은 잘 몰랐었다. 들었던 다른 라흐마니노프라면 진득하게 눌러주는 맛을 선호하는데, 올가 케른은 딱딱 끊어내는 스타일로 보였지만, 엘리아후 인발의 오케스트라에서 뭉뚱그린 유연함과 어울려 서로 돋보이게 했다. 칼 같이 맞는다기보단 서로 보완하는 느낌이었다. 전곡을 다시 들어보고 싶어졌다. 앙코르는 직접 소개했는데 갑자기 뭐 4번이라고 제대로 말도 못 들었는데 곡도 모르는 곡이었다. 템포가 빨라 손이 바빴다는 정도만 봤다. 인발과 케른의 조합은 다른 곡으로 더 가까이에서 나중에 또 볼 수 있으면 좋겠다.

브람스 교향곡 2번에선 브람스만의 음울하면서도 은근한 아름다움이 서서히 나를 가을로 잡아 끌어들였다. 이 곡은 미술로 표현하자면 딱 그거다. 백남준 다다익선 말고 그걸 커버해주는, 그 주변에 설치되어 다른 걸 감싸 안아주는 작품. 그 작품만으로도 온전체이긴 하되, 다른 보완성 작품과 함께하면 서로 더 빛나는 그런 것. 앨범도 어차피 브람스 교향곡 4개가 전집이랍시고 2CD로 한 앨범에 잘 나오니 1번부터 이어서 듣는 게 보통이지 않나. 어쨌든 그런 생각이 들어서였을까, 포근한 느낌을 받았다. 딱히 내세우는 건 없지만, 조용히 곁에 머물러 믿음직한 책사나 비서 같은 편안한 느낌의 음악. 인발 지휘의 푸근 유연함 덕분이었을지도 모른다. 지휘자와 함께 그리고 지휘자 없이 앙코르 하나씩 하면서 포근한 기쁨에만 빠져있을 뻔했던 내게 가을을 다시 환기해 주었다. 그냥 가을이 아니라 여유가 있으니 즐거울 수 있는 가을이 아니냐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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