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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고:분노의 추적자 - 타란티노 영화 본문
1년에 한 번쯤 가게 되는 메가박스 본점인 코엑스에 오랜만에 다녀오게 됐다. 갈 때마다 새삼 느끼지만, 여기선 정말 동네 극장과 달리 상영관 숫자가 커도 상영관 자체도 여전히 크다. 아무 관에서나 봐도 제대로 영화 본 기분이 드는 정말 '난' 극장. 뒤처지지 않게 꾸준한 업그레이드도 칭찬할 만하다.
이 영화는 설령 타란티노 영화인 줄 모르고 보는 사람이라도 보면 그의 영화인 줄 아마 다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차별을 기본으로 말하는 이 영화에서 아이러니하게도 머릿속에 우열을 가려놓고 보지 않으면 재미를 느낄 수 없는 딜레마가 있다. 백인 같은 흑인(장고)이 있고, 흑인 같은 백인(스티븐)도 있고. 또 하나의 웃긴데 웃을 수만은 없는 영화다. 거시적으론 진중하게, 미시적으론 재밌게. 보는 사람이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웃기기도, 웃을 수 없기도 하니까. 그러면 그렇게 보는 시각을 구분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나 또한 뭐든 구분하려는 속성을 이미 지닌 게 아닌가, 나는 과연 사고가 얼마나 자유로운가, 누가 가두지도 않았는데 저 안에 노예처럼 스스로 생각을 가두진 않았는가, 생각할 여유가 있다.
누구 하나 빠지지 않게 연기 다들 좋았고, 음악 또한 놓칠 수 없는 즐거움이다. 언제부턴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리어나도 디캐프리오라던데, 이것도 이탈리아식? 같던 걸 발음만 순 영어식으로 바꾼 건데, 그러고 나서야 상복도 곧 터지기 시작하는 건지? 완전한 별개의 문제일까? 최씨는 초이씨라고 불러야 하나?
차별에 대해 뭔가 찔리는 게 없으면 이런 영화는 많이 나오지도 않을 텐데, 미국에선 대체 다 섞여서 어떻게들 살아가고 있는 걸까? 가봐야겠다.
누구와 봐도 좋은 영화. 원제는 <Django unchained> 이렇게 두 단어로 짧은데 unchained를 왜 이리 길게 엉뚱하게 바꿔 놓는 건지. 하긴 옛날에 워털루 브리지를 애수라고 바꾸는 그랬던 것들 보면 요즘은 낫지. 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