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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카레니나 - 영국이 보여주는 안나 본문
단지 명작을 넘어 가히 최고라는 찬사를 쉽게 붙일 수 있는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가 키이라 나이틀리 주연 영화로 나왔다는 걸 알았을 때부터 무척이나 기대했다. 출판계에선 세계문학전집이 유행처럼 확산하기 시작하던 시기에 출판사 사이에 이 작품을 대표 삼아 엉뚱한 오역 논란을 일으키기도 하는 등 아마도 영원한 센세이션일 것이다. 여기서 난 많은 사람이 인정한 번역이라고 꼭 옳은 번역인 건 아니라고만 덧붙이고 싶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좋다. 비비안 리와(비비안 리는 안나보단 키티 이미지에 더 가깝지 않나? 연기야 잘 했겠지만, 작품에 별 기대가 없기도 하다.) 소피 마르소 것은 보지 못했지만 그레타 가르보의 35년작은 책 세 권을 읽던 도중에 봤었다. 그 35년 영화는 고작 93분으로 기대에 한참 못 미첬는데 이번엔 130분은 됐다. 그래, 적어도 이 정도 상영시간은 되어야 숙고를 거듭한 톨스토이의 대작에 대한 최소한 예의는 지키는 셈이 아닐까? 그렇다고 전에 봤던 93분짜리보다 130분으로 더 길다고만 마음에 든 건 또 아니다. 오페라식 무대 연출을 CG와 적당히 결합하여 넘길 곳은 순식간에 전환하고 극으로 표현할 곳은 나름 제대로 깊이 있게 참 잘 연출했다. 미니어처의 활용도 이 영화에서는 장난감 기차 같은 것을 활용해, 대놓고 의미만 전달하는데도 도리어 제작비도 절감한 대신 꼭 잘 보여주고 싶은 필요한 곳에 집중 투자했을 것 같은 게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각본이 한낱 불륜 로맨스 정도로 보였다면 불쾌했을지도 모르는데 한 예로, 농업을 중시한 듯한 분위기 또한 영화에 짧게나마 장면으로 반영된 것 등 뭔가 빌 듯한 부분을 거의 빼지 않고 다 짚어가면서 극이 진행됐다. 길이, 연출, 각본 등 전면에서 이렇게 까다로운 내 기대를 모두 만족하게 했다. 훌륭하다. 특히 글로는 아무리 잘 적었어도 상상이 부족할 수도 있는 춤 장면에서는 영화의 장점인 시각을 활용해 야릇하면서도 외설적이지 않은 오묘한 분위기를 아주 잘 보여줬다. 정말 훌륭했다.
키이라 나이틀리는 안 그래도 안나 카레니나 역 맡으면 참 잘 어울리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정말 잘 어울렸다. 톨스토이가 원작에서 묘사한 안나의 외모와 분위기를 아주 잘 보여줬다. 우리나라 같으면 양악수술 한다거나 치아교정 한다거나 나이치곤 많은 눈가 주름이라도 잡게 됐을 텐데, 영국 배우라 다행이다. 주드 로를 비롯 영국에 의한, 영국이 보는, 영국이 보여주는 안나 카레니나였다.
고전 문학 영화화 작품 중에는 솔직히 감독이나 제작자가 '그냥 나도 한번 해보는' 것 같은 영화도 있기 마련인데, 이번 <안나 카레니나>는 그렇지 않아 단연 추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