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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 다크 서티 - 가볍게 무거운 본문
먹을 것을 좀 챙겨서 상영관에 입장했다. (아마 곧 볼 <링컨>도 그래야 할 듯.) 내용도 드러난 게 다다. 그냥 말해도 괜찮을 것 같다. 흐름이 참 단순하다. 커플이 봐도 좋(을 것이)다. 긴장이 내내 고조되다 보면 여자가 언젠간 남자에 딱 달라붙을지 모른다. 그런데 그리고 나선 언제 떨어져야 할지 모른다.
왜 요즘 오디션 프로그램들에서 많이들 이런다. 고성도 계속 지르는 게 아니라 폭발적 한 방이 있어야 한다고. 이 영화에서 제시카 채스테인이 그랬다. 무딘 듯, 약한 듯, 잠잠하더니 일순간 지부장에 폭발적으로 일갈한다. 그리고 감정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한 번 더 있다. 결정적 회의에서 "100%"라고 말하는 자신감. 분명히 틀리면 내쳐버리리라 생각했을 상사들 마음을 역이용해 올인하는 배포. 그러더니 마지막엔 홀로 수송기에 탔을 때 어디로 모시느냐는 조종사의 질문에 말없이 흘리는 눈물의 무게감. 그는 이 작전의 전부였고, 이 영화의 전부였다. 영화 속 대사대로 그는 정말 미쳐있었다. 그랬다. 그런 미친 사람 한둘이 세상에 영향을 미친다.
그 눈물은 비단 단 하나의 목표에 온몸과 마음을 다해 성취한 후의 허탈감일 뿐만은 아닐 것이다. 워싱턴으로 돌아가도 환대받지 않을 거란 걸 이미 직감했기에, 그렇다고 자신이 처단한 세력의 지역에 남을 것은 더더욱 아니고, 어디 휴양지 섬에라도 가서 즐기며 살꼬 하니 남자도 없고, 다른 목표를 찾아야 하는지조차 아직 모르는 완전한 자유에 대한 근원적 불안 또한 있었을 터. 막상 임무를 했더니 그 임무를 준 근원에선 자신을 현지에서 곧바로 원하는 곳으로 보내버리라고 모양새는 좋게 조종사에게 명했다는 걸 알아채고는 아무도 자신의 편이 아닌 것 같은 그 말로 할 수 없는 고독감. 그런 느낌들이 복합적으로 잘 와 닿는다.
혹시나 그 사체가 빈 라덴이 아니었을 가능성도 살짝 생각이 들었다. 형제가 다 닮았는데 얼굴 딱 보고 죽어서야 실물 처음 보는 데 맞는지 틀리는지 요원이든 군인이든 아무도 모른다. 주인공이 사체 확인 때 신원이 확실치 않다거나 그가 아니라고 한다면 '100%'라고 주장했던 자신을 스스로 죽이는 게 된다. 그간 상황을 보면 다시 찾을 기회도 없을 것 같고, 새롭게 찾아 나설 다른 누군가가 보이지도 않아서 그냥 맞다고 해버리고 세상에 굴복해버린 것? 그런 무기력한 자신을 깨닫고 차오르는 눈물일 수도 있다. 너무 나간 것 같긴 하지만 가능한 이야기다.
이번에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았던가? 시상식 얼마나 됐다고, 잘 모르겠다; 뭐 오스카가 명예로운 영화상이긴 하지만, 세계 최고의 영화상인 것도 아니고, 눈뜨고 봤을 때부터 도리어 영 별로다. 요번에 이 영화의 대대적 수상이 예정이었는데 막판에 무슨 딜을 해서 넘겼다는 둥 음모론인지 사실인지를 종이 신문 기사로도 봤으니. 그저 마케팅으로만 치부하기엔 풍문의 깊이가 유난히 깊다. 어쨌든 미국이 그만큼 뜨끔하다는 걸 스스로 드러낸 꼴이다.
전체적으로 잔잔함이, 비유하자면 마라톤 경기 중계 같다. 일부만 뜯어본다면 재미없다 못해 지루하나, 처음부터 끝까지 흐름을 읽으며 보면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것. 감독의 전작이라는 <허트 로커>도 떠올려보면 그랬다. 그땐 결말 단 한 번에 터뜨렸다면 이번엔 절정이 중간에 있고, 흐름을 이어가는 꾸준한 긴장감과 마음을 움직이는 뭔가가 있는 마무리까지. 감독이 이런 표현을 보면 좋아할진 모르겠으나, 더 발전했다.
감독과 배우의 각각 또는 함께 할 다음 작품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