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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 영화제 본문
동원예비군훈련에 다녀와 (목욜) 정신을 차려보니 (금욜) 충무로 영화제가 한창! 미리 좀 알아보고 예매도 해놓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럴 생각을 못했던지라, 아쉬운 대로 남은 토일월 3일 중 되는대로 만이라도 챙겨보았다. 가장 고대했던 부분은 충무로 영화제인 만큼 역시나 고전 명화들인데, 훈련 기간에 딱 겹친 마릴린 먼로 회고전 시리즈가 특히 아쉬웠다. 아래는 본 순서대로.
알파빌 - 1965년 베를린 영화제 황금곰상 수상작
뉘 블랑쉬 3편 (섹스, 파티 그리고 거짓말 + 연옥 + 영화란. 여자 그리고 총)
날개 - 제1회 아카데미 최우수작품상 수상작
후앙 페레즈 만나기 - 과달라하라 영화제 최우수작품상 수상작
뉘 블랑쉬를 제외한 셋은 표를 직접 살 수 있었고, 이 밖에 '까따린 바가'나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도 보고 싶었지만, 인기가 많은지 이미 매진이라 어쩔 수 없었다. 그나마 뉘 블랑쉬는 명동 우리은행 앞 메인 티켓 매표소에서 후원사 노트북으로 티켓 벼룩시장에 글 올린 거 수시로 체크해 가면서 열심히 돌아다닌 덕분에! 당일에야 급 못 보게 된 사람과 직거래(?) 양도받아 겨우 볼 수 있었던 것인데 어찌나 뿌듯하던지.ㅋ 그리고 클래식, 즉 고전은 주로 중앙시네마에서 많이 하던데, 그 극장에서 그렇게 하는 것이 맘에 들었다. 그런데 메가박스, CGV, 롯데시네마도 다 끼는데, 단성사랑 피카디리는 안되나? 종로라서 못 끼는 건지, 대기업 극장 체인이어야 돈이 돼선지, 잘은 모르겠다.ㅋ
1965년 영화인 '알파빌'은 당대의 SF영화란 점만으로도 흥미로웠다. 감정을 표현하면 잡혀가는, 논리만 남은 세상에 대한 경계심을 아주 공포물 수준으로 나타냈다. 컴퓨터 등등 기술의 발전에 두려움이 지금보다 훨씬 컸을 당시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는, 시대상을 잘 반영한 작품 같다.
뉘 블랑쉬 3편은 모두 최근 영화인데 '섹스, 파티 그리고 거짓말'은 관객에게 어떤 점이 가장 자극적이었느냐고 설문하기도 했던, 아주 많이 도전적인 작품이고, '연옥'은 솔직히 좀 졸았다.-_-; 그리고 '영화란. 여자 그리고 총'은 한마디로 이런저런 표현의 묶음이라 하겠다.
'날개'는 사실 처음에는 볼 생각이 없었는데, 결국엔 가장 보기 잘했단 생각이 들게 한 작품으로, 1927년 작인 만큼 흑백임은 물론이고 무성 영화임에도, 제일 재밌었다. 재밌었을 뿐 아니라 그 옛날에 공중 촬영을 도대체 어떻게 한 것인지. 물론 스튜디오 내 제자리에서 상하좌우로 요동만 치는 모형 비행기 조종석에 배우가 앉아 대형 선풍기 같은 것을 쐬면서 나는 척 연기를 하고, 배경은 따로 촬영한 하늘을 깔았겠지만, 모든 장면이 그런 것 같지만도 않았고, (그래서 도대체 어떻게 찍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그 옛날에 그 배경만 찍는 것조차도 쉽진 않았을 텐데, 아주 인상깊었다. 코믹, 드라마, 로맨스, 액션 등이 모두 섞여 있는데, 정확히 말하자면, 요즘처럼 다양한 장르가 섞인 게 아니라, 그 다양한 장르들이 나뉘기도 전 영화의 원형이 저런 스타일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ㅋ 그리고 유성 영화가 이듬해에 나왔기에, 이 영화는 유일한 무성 영화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이라고도 한다.
'후앙 페레즈 만나기'는 단두대가 나오는데, 실제로는 참 잔인한 내용인 것을 그렇게 코믹하게 연출할 수 있었음에 박수를 보낸다. 주변 관객들이 자주 웃으면서 보는 동안 사실 내 표정은 비교적 굳은 편이었다. 그런데 다 보고 나서야 손뼉을 치고 싶었던 것이다.
글 쓰는 김에 영화제에 대해 쓴소리 좀 붙이겠다.
1. 여러 안내 약도 상엔 옛 스카라 극장 일대가 '영화의 거리'라고 되어 있는데, 실제 많은 행사 부스들이 있던 그 거리는 지도 상 그곳이 아니었다. 뭐 지도가 틀린 것은 눈감아준다 쳐도, 더 심각한 것은 칩스타운에 앉아있던 자원봉사자들조차 의견이 분분하더라는 것이다. 아예 다 같이 잘못 알고 있는 것도 아니니, 완전 어이가 없어서... 쩝. 물론 비난받을 대상은, 알바도 아닌 자원봉사자들이 아니고, 그들을 똑바로 교육하지 않은 주최 측이 되어야 할 것이다.
2. 영어 안내가 턱없이 부족했다. 물론 홈페이지에서 각 음성과 자막이 어떤지 잘 찾아보면 알 순 있었지만, 외국인들이 현장에서 그런 것까지 쉽게 알 수 있었는진 모르겠다. 가끔 어리벙벙한 표정의 외국인들을 보면 어찌나 내가 다 미안하던지. 뉘 블랑쉬에서도 자원봉사자들끼리 영어 안내는 서로 하라고 미루고, 어떤 말은 안 될 것 같으면 영어로는 안내를 아예 안 해주는 등 개판이었다. 영어 문구를 미리 만들어뒀다가 외우게라도 하고, 내년에도 또 써먹고, 또 써먹고 하면 될 텐데. 외국인들에게 창피해서 원~ 아예 영화제 공식 명칭에서 '국제'는 뗐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대부분의 자원봉사자들은 상냥한 미소와 친절한 태도로 대하고 있었으나, 그런 그들의 마음가짐이나 자세에 비해 주최 측은 알려줘야 할 것들을 충분히 교육하지 않은 것 같아서 그들의 열정이 오히려 안타까울 지경이었다. 내년 4회에선 주최 측은 자원봉사자들 교육 좀 철저히 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