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톤 쿠프만 & 암스테르담 바로크 오케스트라 본문

공연

톤 쿠프만 & 암스테르담 바로크 오케스트라

Johnny_C 2016. 9. 29. 03:37

파이프오르간이 설치되어 개관한 롯데콘서트홀. 오르간 나오는 공연 중 눈에 띈 그 이름 톤 쿠프만. 역시 개관 전부터 기다렸던 그가 왔다! 예전에 내가 톤 쿠프만을 언급한 다른 곳 글이 있어 링크한다. 톤 쿠프만'네'라는 건 당연히 암스테르담 바로크 오케스트라(ABO)를 의미하고, 객원도 아닌 그 완전체로 오늘 내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어린 시절 많이 들어 자연스레 기준이 되어버렸던, 내 바로크 고향 격이나 마찬가지. 언젠가부터 바로크 레퍼런스는 호그우드네로 삼았지만, 어쨌든 머리 아닌 몸에 밴 쪽은 톤 쿠프만네다.

롯데콘서트홀 좌석은 이번엔 셋째 층(10층) 사이드 합창석 앞줄이었다. 파이프오르간이 높이 있는 것도 참작했었다. 그런데 연주하러 올라오지 않고 무대에서 연결로 해서 아쉬웠다. 다만 소리는 어디서 나는지 모를 정도로 홀 전체를 잘 감쌌다. 시야는 고개를 내빼야 무대 중앙이 보이는데, 뒷줄과 높이차가 심해 조금만 고개를 내빼도 아마 가릴 거였다. 또 내 귀 바로 뒤에 소리 공간이 전혀 없기도 했다. 그 바로 뒤 때문은 아니지만, 실제 연주 중 하프시코드가 다른 악기와 달리 유독 홀 정면 반사음으로 들리는 것만 도드라져서 타이밍이 맞지 않았다. 롯데콘서트홀 10층 합창석은 협주곡에서 싱크율도 아마 그렇고, 소편성은 잔향이 너무 강해 부적합하겠다.

바흐 관현악 모음곡 3번으로 시작했다. 하프시코드 실황은 처음인데 소리도 그래서, 뚜껑은 왜 안 여나도 생각했다. 연주 처음에는 현악기도 좀 그런 것 같았지만, 특히 관악기 뭔가 제대로 안 맞아 쉼표 때 보정 같은 걸 하며 진행됐다. 이래저래 듣는 나는 아직 즐기질 못 하고, 저게 이제는 맞은 건가, 서서히 서로 적응해 갈 즈음 쿠프만 악보가 한꺼번에 두 장 넘겨지는 바람에! 악단이 위기는 잘 넘긴 편이지만 그래도 살짝 뭉개졌고. 내 기대가 너무 컸던 걸까, 첫 곡에선 실망이 컸다. 페이지 터너는 왜 오르간에만 나오는 거람? 하프시코드도 지휘까지 하느라 분주한데.

순서가 바뀌어 바흐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4번이 두 번째로 나왔다. 강산이 바뀔 세월마다 헬무트 빈셔만, 리히터, 호그우드 순으로 주로 들어왔는데, 톤 쿠프만네의 브란덴부르크는 나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확 와 닿지도 않았다. 솔직히 누구든 4번 하나만 들어서는 별로 맛도 없다. 4번만 하는 건 아쉬웠지만 두 바로크 리코더와 바이올린 솔로는 아주 인상 깊었다. 1부는 너무 정신없이 헐레벌떡 지나간 느낌이었다. 2부 시작에 바흐 오르간 독주곡 셋(BWV 645, 659, 578)도 그렇게 이어졌다. 전체적으로 나쁘게 말하면 정성 없어 보인다 싶고, 좋게 말하면 네덜란드 특유의 vibrant한, 긍정적 에너지가 보였다. 내가 알던 톤 쿠프만보다도 실황은 더욱 그러했다.

어떤 젊은 신예가 그러면 그냥 싱싱한 기운 좋다 하고 소소한 점들은 앞으로 다듬으면 되겠거니 넘어가고 말만도 한데, 톤 쿠프만 같은 분이 저러면? 의도적으로 그러는 거다. 아직도 더 그렇게 만들어가는 느낌조차 받았다. 매너리즘 따위는 없다. 사뭇 대단하다. 톤 쿠프만 연세가 거의 여든을 향하고 있을 텐데, 시종일관 더 명랑하게, 그리고 소소한 점들은 말 그대로 소소하다. 문득 가슴이 찔린다. "너무 꼬치꼬치 따지지 좀 말고 그냥 좀 즐겁게나 살아라"라고 노(老) 음악가의 오랜 깨달음이 내게 일단 전해진 듯했다.

톤 쿠프만이 바로크 통달을 넘어, 이후 소위 모차르트 풍으로 이어진 음악사를 이제 직접 다시 겪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내 촉이 부족해 센싱은 덜 했지만, 이면에 애환 역시 없진 않았다. 다시 ABO와 함께한 하이든 오르간 협주곡 1번에서는 안정감이 살짝 들었는데, 다시 생각해보면 안정감이라기보단 조심스러운 그만의 다음 탐색이었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지도 모른다.

마지막 바흐 관현악 모음곡 4번은 완벽했다. 앞서 그 모든 느낌을 보여주겠다는 듯이. 톤 쿠프만도 수석들도 단원들도 모두가 첫 곡에서 베스트를 못 보여준 건 알았을 거다. 절치부심했는지, 연주회 전체에 걸쳐 서서히 궤도에 올라 결국 수석들이, 솔로 악기도 포함해, 좋았다. 그리고는 앙코르는 앞서 했던 같은 곡들을 또 했다. 그런데 본 연주 때보다 앙코르 때 그 원래의 내가 알던 안정된 느낌이 들었다. 명백했다. 톤 쿠프만은 본 연주 내내 자신이 여전히 진행형이라고 강변하고 있던 거였다. 새삼 대단하다. 아, 제대로 정말 즐기고 들을만하면 꼭 그렇게 음악회는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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