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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인 - 날 것 그대로 본문

영화

나인 - 날 것 그대로

Johnny_C 2009. 12. 31. 07:40

뮤지컬 원작이 있다는 정도만 알고 영화를 보고는, 이것은 영화라는 매체로 나온 뮤지컬이 아니라, 완전한 영화라고 해야 실례가 되지 않을 작품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영화 감독에 관한 줄거리 자체가 원작 플롯에 들어 있는 것이었다. 정확한 감상을 위해서라도 뮤지컬로도 꼭 보고 싶다. 오페라 얘기가 들어 있는 '오페라의 유령'을 영화로 먼저 봤을 때의 아리송한 느낌이랄까. 전에 '시카고'는 영화로 괜찮게 보고 나서도, 뮤지컬로 또 볼 생각까진 하지 않았는데, 이번엔 그렇지 않다. 어쨌든 난 '뮤지컬 영화'로만 생각하는 실례를 범하지 않고, 100% 영화로서만 재해석을 하기로 했다.

시작부터 어떻게 할지 고민하는 모습을 그대로 드러냈다가 'Nothing' 대사가 반복되면서 화면 상 암흑(자막에선 '백지'라고 했지만 아무튼) 속에서 차차 조명의 흐름과 함께 여배우들이 하나 둘 등장인물 소개하듯 나타난다. 후에도 쭉 그렇게 눈과 귀를 즐겁게 하는 장면과 주인공 감독에게 감정이입하게 하는 장면이 교대로 흘러간다. 꼭 일치하진 않지만, 흑백과 컬러의 교차까지 더해서, 영화 전체는 적당한 무게감에 확실한 오락성과 시간성도 갖췄다. 여기서 시간성이란 장면 전환과 일부러 엇박자로 한듯한 흑백과 컬러의 교차가 어느 것이 현대이고 어느 것이 과거인지 확실히 구분 짓지 않은 것을 말한다. 우리가 보통 말하는 '옛날 영화'에서 변천해 온 소위 '현대적 영화'는 왠지 뭔가가 있어야만 말 그대로 '있어' 보인다. 이 영화 속 대사이기도 한데, 현대 영화 감독들은 뭔가를 넣어서 무거워 보이려 '폼을 잡는다'. 그러나 이 영화는 쓸데없는 폼을 과장해 잡지 않는다. 이 영화에선 감독의 고뇌 과정을 날 것 그대로 드러낸다. 구상부터 완성까지 서플먼트로나 볼 수 있고, 영화 자체는 화려하게 포장된 완성 상품으로 꾸며져야 하는 대다수의 현대 영화들과는 달리, 이런저런 힘든 과정이 있었다는 것 자체가 아름다운 영화 같은 것이고, 바로 그 과정의 드러냄을 담은 영화가 '나인'인 것이다. (파울루 코엘류 저 '포르토벨로의 마녀' 뒤표지에 강금실 변호사의 평이 있는데, 거기에 '과정의 드러냄'이란 표현이 있고, 그의 작품은 그래서 훌륭하다는 점 또한 이해한다면, 이 영화의 훌륭함 또한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영화 같은 삶'이 있으면, '삶 같은 영화'가 있을 것인데, 바로 이 영화가 그 '삶 같은 영화'라 하겠다. 또 현실에서의 삶과 영화를 구분하지 못해 아내에게 차였던 주인공의 입장이, 흑백과 컬러가 장면과 엇박자 교차로 조금씩은 물려 있는 점과 어울린다. 내용과 표현이 어느 것 하나 튀지 않고,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다. 긴말 접고 짧게 줄이자면, 크리스티나 아길레라의 'Back to Basics' 앨범을 좋아한다면, 이 영화는 강추다. 각각 영화와 음반으로 현대인은 구분하지만, 이 영화와 그 앨범은 일맥상통한다고 본다. 또 다른 최근 영화 중엔 '퍼블릭 에너미'가 떠오르는데, 클릭해보면 뜨겠지만, 혹평을 해놨다. 뭔가 균형이 안 맞아 보였던 것이다.

영화 속 감독은 비판을 받는 처지인 척하지만, 은근히 강한 주장을 부드럽게 하고 있다. '예스'나 '노'라고 대답하는 게 감독 일이니까 그렇게 대답하게끔 질문하겠다는 '007 대모'의 대사는, 감독의 그런 상황은 주변에서 그렇게 하게끔 해서라는 변명일 수 있다. 실제 요즘 관객은 톱배우의 얼짱 각도면 충분(?)한데 각본에 왜 그리 집착하느냐는 둥, 기자들과 제작자와 스태프들에게 들들 볶여 제대로 쉴 수조차 없는 모습 등은 감독이란 직업을 가진 자들을 대표한 세상에 대한 항변이다. 웬만한 카리스마를 갖춘 거장 감독이 아니고서야 감히 영화화하기 어려운 주제였을 것이다. (故 시드니 폴락 감독이 살아 있다면 이 작품의 영화화를 맡았을지, 또 그랬다면 어떻게 연출했을지 참 궁금한데 아쉽다.)

배우들 얘기 역시 안 할 수 없는데, 개인적으론 주인공이 '하비에르 바르뎀'이었으면 더 어울렸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페넬로페 크루즈도 있고 해서 국적 안배도 고려한 것이 아닌가 추측해본다. 또 프랑스 여자라 이름을 한글로 어떻게 적어야 정확한 것인지 모르겠는 마리온 꼬XX르는 특히 배역에 어울리는 연기를 훌륭히 한 것 같고, 니콜 키드먼은 오래전부터 내가 국내까지 통틀어 최고로 좋아하는 배우지만, (오히려 그래서인가?) 이번 영화에 어울리진 않아 보였다. 아까워 보였달까? 딱히 떠오르진 않지만 다른 배우가 나았을 것 같다.^^

P.S. 간만에 공들여 글 쓴 김에, 올해의 마지막 글이 될 것 같아, 내가 한 해 동안 본 개봉작 중 나만의 베스트 작품을 여기서 선정해 보려 한다. 당연하겠지만 내가 본 영화 중에서만 고르는 것이다.ㅋ 지난해엔 한국 영화는 '신기전', 외국 영화는 '이스턴 프라미스'였다면, 올해엔 각각 불과 한 달 전의 '백야행'과, 작년 같지만 알고 보면 1월이었던 '작전명 발키리'인데, 올해 상반기엔 글을 하나도 남기지 않아 이 영화평은 따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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